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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生物學, 영어: biology)은 생명현상과 살아있는 생명체의 물리적 구조, 화학적 과정, 분자적 상호작용, 생리적 메커니즘, 발생 및 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자연과학이다. 과학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의 통일 된 분야로 통합하는 특정 공통 개념들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항상성으로 정의되는 안정되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변화시키고, 부분적으로 엔트로피를 감소시킴으로써 생존해 가는 개방계이다.
생물학은 세포를 생명체의 기본 단위로, 유전자를 유전의 기본 단위로, 진화를 생물 종들의 출현과 멸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생물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생화학,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을 탐구하는 분자생물학,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을 다루는 세포생물학, 기관이나 조직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생리학, 환경에서 다양한 생물 개체들이 맺는 관계를 탐구하는 생태학 등으로 생물학의 하위분야는 연구 방법과 목적에 따라 구별 될 수 있다.
실험생물학은 제안된 이론의 타당성을 테스트하고,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메커니즘과 약 40억년 전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였고, 생물 체계의 복잡성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경험적인 실험을 수행하는 반면, 이론생물학은 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정량적인 모델을 만든다.
생물학(biology)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βίος"(bios, "life", "생명"이란 뜻) 접미사 "-λ ο γία"(-logia, "study of", "-학(學)"이라는 뜻) 로부터 유래되었다. 생물학이라는 용어는 1766년 크리스티안 볼프의 제자인 미하엘 크리스토프 하노브의 《Philosophiae naturalis sive physicae: tomus III, continens geologian, biologian, phytologian generalis》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다시 사용되었다. 생물학이라는 용어의 라틴어 형태는 1736년에 스웨덴의 과학자 칼 폰 린네가 그의 저서 《Bibliotheca botanica》(영어: Bibliography of botany, 식물학의 문헌)에서 "biologi"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생물학(독일어: Biologie)"이란 용어의 최초의 독일어 사용은 린네의 저서의 1771년 번역본에서였다. 1797년에 테오도르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루스(Theodor Georg August Roose)는 《Grundzüge der Lehre van der Lebenskraft》라는 책의 서문에서 "생물학(독일어: Biologie)"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생물학이란 용어는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의사인 고트프리트 라인홀트 트레비라누스가 자신의 저서 《Biologie, oder Philosophie der lebenden Natur》(전6권, 1802년~1822년)에서 현대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칼 프리드리히 부르다흐는 1800년에 형태학, 생리학 및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라는 보다 제한된 의미로 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의학에 대한 정식 연구는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경~370년 경)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생물학의 발전에 가장 폭 넓게 공헌을 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322년)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History of Animals)와 생물학적 인과 관계와 생명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좀 더 경험에 근거를 둔 작품들, 그의 자연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 다른 작품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설한 리케이온 학원의 후계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에 대한 일련의 책들을 저술했는데, 이는 고대에 중요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식물학에 대한 저술을 남긴 알 자히즈(al-Jahiz, 781년~869년), 아부 하니파 디나와리(Al-Dīnawarī, 828년~896년)가 중세 이슬람 세계의 학자들로 그들에 의해 큰 발전을 이루었고,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저술을 남긴 알 라지(Rhazes, 865년~925년) 등이 있다. 의학은 특히 그리스 철학자의 전통을 토대로 연구하는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잘 연구되었고, 박물학은 특히 고정된 생명체들의 계층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생물학은 안톤 판 레이우엔훅에 의한 현미경 성능의 극적인 개선과 함께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이 정자, 세균, 적충류, 미생물들의 다양성을 발견한 것은 이 시기였다. 얀 슈밤메르담의 연구는 곤충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현미경적인 해부와 염색의 기본적인 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현미경 관찰 기술의 발전은 생물학적 사고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초에 많은 생물학자들은 세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1838년에 동물세포설을 주장했던 독일의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테오도어 슈반은 "모든 동물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했다. 또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 단위일 뿐만 아니라 생명활동이 일어나는 기능적 단위"라고 슐라이덴과 슈반이 세포설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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